이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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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상은 일제강점기 한국의 대표적인 아방가르드 작가로, 소설가이자 시인이며, 본명은 김해경이다. 그는 기존 문학의 틀을 깨는 실험적인 작품들을 통해 한국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10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건축 기수로 근무했다. 결핵으로 요양하며 기생 금홍과 교류하기도 했으며, 다방을 운영했으나 실패했다. 1930년대 초반부터 소설, 시, 수필 등 다양한 작품 활동을 펼쳤으며, 특히 시 《오감도》는 난해한 형식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1936년 일본으로 건너가 불온사상 혐의로 체포되었으며, 1937년 2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작품들은 사후에 재조명되어 이상문학상 제정 등 다양한 방식으로 기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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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작가)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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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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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김해경 |
출생일 | 1910년 9월 23일 |
출생지 | 조선 경성부 서서 인달방 사직동계 사직동 (現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 |
사망일 | 1937년 4월 17일 |
사망지 | 일본 제국 도쿄시 도쿄제국대학 부속병원 |
직업 | 시인 소설가 건축가 화가 삽화가 |
활동 기간 | 1929년 ~ 1937년 |
언어 | 한국어 |
양부 | 김연필 |
생부 | 김연창 |
생모 | 박세창 |
배우자 | 금홍 변동림 |
친척 | 김옥희(누이동생) 김운경(남동생) 구본웅(처이질뻘) |
로마자 표기 | I Sang |
출생 로마자 표기 | Gim Haegyeong |
작품 활동 | |
주요 작품 | 오감도 날개 |
문학 사조 | 모더니즘 |
소속 단체 | 구인회 |
필명 | |
필명 | 이상 비구 보산 하융 |
2. 생애
이상은 1910년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서 태어나, 두 살 때부터 큰아버지 김연필에게 맡겨져 교육을 받았다. 일곱 살에 신명학교에 입학했고, 이후 동명학교(후에 보성고등보통학교와 합병), 경성고등공업학교로 진학했다. 보성고등보통학교 시절에는 화가를 꿈꾸기도 했으며, 학교에서 우등상을 받기도 했다.
1929년,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조선총독부 관리였던 큰아버지의 도움으로 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술수로 취직했다. 11월에는 관방회계과 영선계로 전근했다. 이 무렵, 일본어 건축 회계 잡지 『조선과 건축』의 표지 그림 공모에 응모하여 1등과 3등에 입선했고, 이 잡지에 일본어로 몇 편의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상'이라는 필명은 경성고등공업학교 졸업앨범에도 실려 있어, 건축기사로 근무하기 전부터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필명은 절친한 화가 구본웅이 선물한, 자두(李)가 들어 있는 상자에 담긴 그림 물감에서 유래했다.
1933년, 객혈로 직장을 그만두고 황해도 백천온천에서 요양하며 기생 금홍을 만났다. 서울로 돌아와 종로 1가에 다방 "츠바메(つばめ)"를 개업하고 금홍을 불러들여 장사를 시켰으나, 경영은 잘 되지 않았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다방 경영에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된 시 오감도(烏瞰圖)는 난해하다는 이유로 독자들의 항의를 받아 15회 만에 중단되었다.
1936년 여름, 이화여자전문학교 출신(중퇴)인 변동림과 결혼했지만, 생활은 파탄났고 몸은 극도로 쇠약해졌다. 같은 해 가을, 도쿄로 건너갔으나 거지처럼 방황하다 불온선인 혐의로 니시칸다경찰서에 구금되었다. 한 달 후 건강 악화로 석방되었지만, 삶의 의욕을 잃은 상태였다. 1937년 4월 17일 오전 4시, 도쿄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2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인은 폐결핵이었다.
2. 1. 어린 시절
이상(李箱)은 1910년 9월 23일(음력 8월 20일) 경성부 북부 순화방 반정동(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에서 아버지 김연창(金演昌)과 어머니 박세창(朴世昌) 사이의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4] 본명은 김해경(金海卿)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형제로는 누이동생 김옥희와 남동생 김윤경이 있었다.아버지 김연창은 궁내부 활판소에서 일하다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한 후 이발관을 개업하여 가계를 꾸렸다.[6] 1913년 이상은 백부 김연필의 양자로 입양되어 자랐다.[6] 백부는 본처 사이에 소생이 없었기에 이상을 친자식처럼 키우고 학업을 도왔다. 그러나 백부가 새로운 아내 김영숙을 데려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김영숙은 김연필과 결혼하기 전 낳은 아들 문경이 있었고, 이상을 문경과 차별하며 홀대했다. 백부 또한 이러한 차별에 별다른 태도를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어린 조카를 입양했음에도 아들이 아닌 가문을 일으킬 인재로만 생각하여 엄격하게 대했다.
1917년 여덟 살이 되던 해, 이상은 누상동의 신명학교에 입학했다.[43] 재학 중 화가 구본웅과 동기생이 되어 오랜 친구로 이어졌다. 1921년 신명학교를 졸업한 뒤 동광학교에 입학했다. 1922년 동광학교가 보통학교와 합병되자 보성고보에 편입했다. 보성고보 재학 중에는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화가를 지망했으며, 학업 성적도 상급 수준이었다.[43] 1925년 교내 미술전람회에서 유화 〈풍경〉이 입선하기도 했다.[44]
1926년 3월, 보성고보를 졸업한 이상은 같은 해 경성 동숭동의 관립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부에 입학했다.[43] 1929년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졸업 기념 사진첩에 본명 대신 '이상(李箱)'이라는 별명을 썼는데,[43] 이는 구본웅에게 선물 받은 화구상자(畵具箱子)에서 연유했다는 증언이 있다.[45] 오얏나무(혹은 매화나무)로 만들어진 상자였기 때문에 '이상(李箱)'은 '오얏나무(혹은 매화나무) 상자'라는 뜻으로 풀이된다.[45][8]
2. 2. 조선총독부 기수 시절과 등단
1929년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학교의 추천으로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로 발령받았다. 그해 11월 조선총독부 관방회계과 영선계로 자리를 옮겼다.[43] 조선건축회에 정회원으로 가입, 이 학회의 일본어 학회지 《조선과 건축》(朝鮮と建築)의 표지 도안 현상 모집에 1등과 3등으로 당선되었다.[43] 1930년 조선총독부가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일반에게 홍보하기 위해 펴내던 잡지 《조선》 국문판에 2월호부터 12월호까지 9회에 걸쳐 데뷔작이자 유일한 장편소설 《12월 12일》을 필명 이상(李箱) 아래 연재하였다.[43][6] 1931년 6월,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서양화 〈자상〉이 입선하였다.[43] 같은 해 《조선과 건축》에 일본어로 쓴 시 〈이상한가역반응〉 등 20여 편을 세 차례에 걸쳐 발표했다.[43]1931년 7월, 《조선과 건축》에 발표한 일본어 시는 다음과 같다.[6]
- 〈이상한 가역반응〉 (異常ナ可逆反應|이상한가역반응일본어)
- 〈파편의 경치〉 (破片ノ景色|파편의경치일본어)
- 〈▽의 유희〉 (▽ノ遊戯|▽의 유희일본어)
- 〈수염〉 (ひげ|수염일본어)
- 〈BOITEUX · BOITEUSE〉
- 〈공복〉 (空腹|공복일본어)
1931년 8월, 《조선과 건축》에 〈조감도〉(鳥瞰圖)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일본어 시는 다음과 같다.[6]
- 〈이인····1····〉 (二人····1····|이인····1····일본어)
- 〈이인····2····〉 (二人····2····|이인····2····일본어)
- 〈신경질적으로 비만한 삼각형〉 (神経質に肥満した三角形|신경질적으로비만한삼각형일본어)
- 〈LE URINE〉
- 〈안〉 또는 〈얼굴〉 (顔|안일본어 또는 얼굴한국어)
- 〈운동〉 (運動|운동일본어)
- 〈광녀의 고백〉 (狂女の告白|광녀의고백일본어)
- 〈흥행물천사〉 (興行物天使|흥행물천사일본어)
1931년 10월에는 "삼차각설계도"(三次角設計圖)라는 이름으로 일본어 시 일곱 편을 발표했는데, 각 시의 제목은 〈선에 관한 각서 1〉(線に関する覚書1|선에관한각서1일본어)부터 〈선에 관한 각서 7〉까지이다.[6]
1932년 《조선과 건축》에 〈건축무한육면각체〉 제하에 일본어 시 〈AU MAGASIN DE NOUVEAUTES〉, 〈출판법〉 등을 발표했다.[43] 같은 해 3월과 4월, 《조선》에 단편소설 〈지도의 암실〉을 비구(比久) 필명으로, 〈휴업과 사정〉을 보산(甫山) 필명으로 발표했다.[43][6] 같은 해 《조선과 건축》 표지 도안 현상 공모에서 가작 4석으로 입상했다.[43]
1932년 7월, "건축 무한육면각체"(建築無限六面角體)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일본어 시는 다음과 같다.[6]
- 〈AU MAGASIN DE NOUVEAUTES〉
- 〈열하약도 No. 2〉 (熱下略圖 No.2|열하약도 No. 2일본어)
- 〈진단 0:1〉 (診断 0:1|진단 0:1일본어)
- 〈이십이년〉 (二十二年|이십이년일본어)
- 〈출판법〉 (出版法|출판법일본어)
- 〈차 8씨의 출발〉 (且8氏の出発|차8씨의출발일본어)
- 〈대낮―어떤 ESQUISSE―〉 (真昼―或るESQUISSE―|대낮―어떤ESQUISSE―일본어)
2. 3. 병마와 방황
1931년 폐결핵 감염 진단을 받았고, 병세는 점차 악화되었다.[43] 1933년 새로 부임한 일본인 상사와의 마찰로 스트레스를 받아 각혈 증세까지 보이며 폐결핵이 악화되어 기수직에서 물러나 황해도 배천 온천에서 요양하였다.[43] 이곳에서 기생 금홍을 만나 서울로 데려와 종로 1가에 다방 '제비'(つばめ|쓰바메일본어)를 개업하고 동거하였다.[43] 이상은 머리카락과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는 등 방탕한 생활을 했다.같은 해 문학단체 구인회의 핵심 동인인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박태원 등과 교류하였고,[43] 정지용의 주선으로 잡지 《가톨릭청년》에 〈꽃나무〉, 〈이런 시〉 등을 국문으로 발표했다.[43] 1934년 이태준의 도움으로 시 〈오감도〉를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했지만, 표현이 난해하다는 독자들의 항의와 비난에 시달려 15편을 끝으로 연재를 중단하였다.[43] 같은 해 동 잡지에서 연재된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삽화를 그렸다.[43]
1935년 다방 '제비'를 경영난으로 폐업하고 금홍과 결별하였다.[43] 인사동의 카페 '쓰루'(鶴)와 다방 69를 개업 양도하고 명동에서 다방 '무기'(參)를 경영하다 문을 닫은 후 성천, 인천 등지를 떠돌아다녔다.[43]
2. 4. 여성 관계
이상|이상한국어은 1933년 폐결핵 치료를 위해 배천 온천에 들렀다가 기생 금홍(錦紅)을 처음 만났다.[47] 두 사람은 연인 관계로 발전했고, 이상은 종로1가에 제비다방을 열어 금홍을 마담 자리에 앉히고 동거를 시작했다.[47] 1935년까지 이어진 동거 생활 동안 이상은 순탄치 않은 생활을 했다.[47] 제비다방이 경영난에 빠지자 금홍은 외박을 자주 하게 되었다.[47] 1936년 발표된 이상의 소설 <날개>에는 무기력한 남편과 매춘을 하는 아내가 등장하는데, 극중 아내의 이름 '연심'은 금홍의 본명이다.[47] 금홍의 이러한 행동에 이상은 "예전 생활에 대한 향수"가 났냐며 그녀를 몰아세웠고, 이에 금홍은 가출을 하거나 이상을 심하게 때리기까지 하였다.[47] 1936년 12월 발표된 소설 <봉별기>에서 “하루 나는 제목 없이 금홍이에게 몹시 얻어맞았다. 나는 아파서 울고 나가서 사흘을 들어오지 못했다. 너무나도 금홍이가 무서웠다. 나흘 만에 와 보니까 금홍이는 때 묻은 버선을 윗목에다 벗어 놓고 나가 버린 뒤였다.” 라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47] 1935년 여름 금홍은 몇 번의 가출 끝에 결국 이상의 집을 완전히 나가버렸고, 그해 9월 제비다방은 문을 닫았다.[47]제비다방이 경영난에 시달릴 무렵, 이상은 부모의 집을 저당 잡혀 인사동 카페 ‘쓰루’를 인수하고 카페 ‘엔젤’에서 근무하던 권순옥을 여급으로 데려왔다.[46] 이상이 권순옥과 처음 만난 것은 4년 전이다.[46] 권순옥은 금홍과는 다르게 고리키 전집을 전부 독파한 지적인 여성이었다.[46] 권순옥은 이상의 창백한 얼굴과 고수머리, 즉흥적이고 무계획한 생활 태도와 천재적인 작품 세계가 D.H.로렌스와 흡사하다고 보고 그에게 ‘D.H.로렌스의 모조품’이란 별명을 붙여주었다.[46] 이상은 이 별명을 몹시 마음에 들어 정인택을 비롯한 그의 친구들에게 자랑하곤 했다.[46] 이상은 권순옥에게 빠지게 되었지만 이어지지 못했는데, 그 이야기는 1936년 6월 발표된 소설 <환시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46] <환시기>에서 ‘나’는 이상 자신을, 순영은 권순옥, 송군은 소설가 정인택을 나타내고, 다음과 같은 구절을 확인할 수 있다.[46] “나와 순영이 송군 방 미닫이를 열었을 때 자살하고 싶은 송군의 고민은 사실화하여 우리들 눈앞에 놓여져 있었다. 아로날 서른여섯 개의 공동(空洞) 곁에 이상(李箱)의 주소와 순영의 주소가 적힌 종잇조각이 한 자루 칼보다도 더 냉담한 촉각을 내쏘면서 무엇을 재촉하는 듯이 놓여 있었다. (…) 나는 코고는 ‘사체’를 업어내려 자동차에 실었다. 그리고 단숨에 의전병원으로 달렸다.”[46] 이상은 권순옥을 사랑하였지만, 이상의 친구였던 정인택 또한 그녀를 짝사랑하면서 이들은 삼각관계에 빠지게 되었다.[46] 이에 권순옥의 마음을 얻고 싶었던 정인택은 앞의 책 내용처럼 자살 기도까지 하였다.[46] 이 사건을 계기로 권순옥과 정인택이 결혼에 이르게 되었으며, 이들의 결혼 사회를 이상이 보았다는 것도 당시 화제가 되었다.[46]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문학소녀였던 변동림은 화가 구본웅의 이모다.[47] 구본웅은 친모가 산후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난 후 계모 변동숙의 손에 자랐는데 변동숙은 구본웅을 지극정성으로 키웠다.[47] 그런데 변동숙의 아버지가 훗날 새장가를 들어 자신과 스물여섯 살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여동생을 낳았는데, 그녀가 바로 변동림이다.[47] 변동림은 연상의 조카 구본웅의 친구 이상과 커피를 마시고 데이트를 하면서 문학을 논하다가 사랑에 빠졌고,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그와 결혼하겠다고 결심했다.[47] 이상이 폐병을 앓고 있음을 아는 변동숙은 이를 반대했지만, 변동림은 1936년 6월 이상과 결혼을 강행했다.[47] (그러나 두 사람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고, 그래서 이상의 호적에는 변동림의 이름이 존재하지 않는다.)[47]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였지만, 이상의 폐결핵은 점점 심해졌고 이에 구본웅은 천재이자 연하의 이모부인 그가 그렇게 허망하게 삶을 마감하도록 놔둘 수 없다며, 일본으로 가서 요양하라고 돈을 건넸다.[47] 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액수는 아니었기에 결혼 4개월 만인 1936년 9월 이상은 혼자 일본으로 떠났다.[47] 1937년 2월 일본에서 요양하던 이상은 공원을 산책하다 불령선인이라는 죄목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47] 이상은 니시칸다 경찰서에 34일간 구금되었는데, 이때 건강이 다시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악화되었다.[47] 얼마 후 변동림은 도쿄에 거주하는 이상의 친구에게 도쿄 제국대학 부속병원에 입원한 이상이 매우 위독하기에 빨리 일본으로 오라는 전보를 받았다.[47] 1937년 4월 17일 이상은 변동림이 병원에 도착하고 며칠 후 “멜론이 먹고 싶소”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47] 변동림은 수필 <월하의 마음>에서 이상의 마지막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47] “나는 철없이 천필옥에 멜론을 사러 나갔다. 안 나갔으면 상은 몇 마디 더 낱말을 중얼거렸을지도 모르는데. 멜론을 들고 와 깎아서 대접했지만 상은 받아 넘기지 못했다. 향취가 좋다고 미소짓는 듯 표정이 한 번 더 움직였을 뿐 눈은 감겨진 채로. 나는 다시 손을 잡고 가끔 눈을 크게 뜨는 것을 지켜보고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47] 훗날 변동림은 이상의 죽음에 대해 “그는 가장 천재적인 황홀한 일생을 마쳤다. 그가 살다가는 27년은 천재가 완성되어 소멸되는 충분한 시간이다”라고 회상했다.[47]
2. 5. 일본으로의 도피와 죽음
1936년 변동림과 결혼했으나, 이상의 폐결핵이 심해져 구본웅의 권유와 지원으로 요양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47] 그러나 결혼 4개월 만인 1936년 9월, 이상은 혼자 일본으로 떠났다.[47]1937년 2월, 일본에서 요양하던 중 공원을 산책하다 불령선인이라는 죄목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니시칸다 경찰서에 34일간 구금되었는데, 이때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었다.[47] 얼마 후 변동림은 도쿄에 거주하는 이상의 친구에게서 도쿄 제국대학 부속병원에 입원한 이상이 매우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았다.[47]
1937년 4월 17일, 이상은 변동림이 병원에 도착하고 며칠 후 “천필옥의 멜론이 먹고 싶소”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47] 변동림은 수필 〈월하의 마음〉에서 “나는 철없이 천필옥에 멜론을 사러 나갔다. 안 나갔으면 상은 몇 마디 더 낱말을 중얼거렸을지도 모르는데. 멜론을 들고 와 깎아서 대접했지만 상은 받아 넘기지 못했다.”라고 회상했다.[47] 훗날 변동림은 이상의 죽음에 대해 “그는 가장 천재적인 황홀한 일생을 마쳤다. 그가 살다가는 27년은 천재가 완성되어 소멸되는 충분한 시간이다”라고 회상했다.[47]
말년의 이상은 술과 여자를 즐겼다고 한다. 동료 문인이자 친구인 박태원은 이상에 대해서 "그는 그렇게 계집을 사랑하고 술을 사랑하고 벗을 사랑하고 또 문학을 사랑하였으면서도 그것의 절반도 제 몸을 사랑하지는 않았다."면서 "이상의 이번 죽음은 이름을 병사에 빌었을 뿐이지 그 본질에 있어서는 역시 일종의 자살이 아니었든가 - 그러한 의혹이 농후하여진다."고 했다.[48]
2. 6. 사후
이상문학상은 그를 기리기 위해 출판사 문학사상사에서 1977년 제정하여 매년 시상하고 있다. 2008년에는 현대불교신문사와 계간 ‘시와 세계’가 이상시문학상을 제정해[49] 역시 매년 수상자를 내고 있다. 2010년에는 이상 탄생 100주년을 맞아 생전에 발표한 작품과 사후 발굴된 작품을 포함해 그의 문학적 세계를 재발견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45]3. 작품 세계와 특징
이상은 작품에서 문법을 무시하거나 수학 기호를 사용하는 등 기존 문학 체계를 벗어난 실험적인 시도를 했다. 이는 한국 문학에서 이전에 거의 시도되지 않았던 것으로, 그의 작품은 발표 직후부터 현대까지 문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고 평가된다.[50]
그의 작품은 줄거리 전개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 소설은 극단적으로 주인공의 내면에만 집중하는 자폐적 특징을 보인다.[50] 주인공 역시 사회에서 소외되어 자신의 흥미나 형이상학적 의미에만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작가 이상 자신에 대한 묘사라고도 분석된다.[50]
문법 파괴와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한 독특한 서술 방식은 주인공의 무의식적인 내면을 잘 드러내며,[50] 기존 문학에 대한 반감 또는 무시를 의미하는 동시에, 서술 대상을 없애고 언어 자체에만 비중을 둔다.
일부에서는 이상이 언어유희를 이용해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하는 월간지에 '12, 12'라는 제목의 소설을 연재하여 일제에 저항했다고 주장한다. 조선총독부 일본인 관리들이 '12, 12'를 숫자로만 이해하고 한글 발음으로 욕설이 된다는 점을 몰랐다는 점을 이용해 그들을 골탕 먹였다는 것이다.[51] 그러나 이는 이상이 일제에 대한 반감이나 독립운동에 대한 관심을 보인 적이 없다는 점에서 부정되기도 한다.
이상은 일제강점기 한국의 대표적인 아방가르드 작가로, 그의 작품은 언어, 내면성, 자아와 외부 세계의 분리에 대한 실험을 보여준다. 특히 그의 시는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같은 서구 문학 개념의 영향을 받았다. 건축가 출신이었던 이상의 배경은 그의 작품에 영향을 미쳐, 선, 점, 숫자 체계, 방정식, 도표 등 수학과 건축의 언어를 종종 통합했다.[24]
그의 문학적 유산은 근대주의적 경향으로 특징지어진다. 그의 시는 현대인의 황량한 내면 풍경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오감도 시제1호"는 반현실주의 기법을 사용하여 불안과 공포의 주제를 응축한다. 그의 소설은 전통적인 소설 형식을 해체하여 현대 생활의 조건을 묘사한다. 예를 들어, ''날개''는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하여 일상의 현실과 연결될 수 없는 단편적인 상품인 현대인의 소외를 표현한다.[10]
이상은 생전에 작품으로 많은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1950년대부터 재인쇄되기 시작했다. 그의 명성은 1970년대에 급상승했고, 1977년에는 이상문학상이 제정되었다. 2007년에는 한국시인협회에서 한국 현대 시인 10인에 선정되었다.[25] 그의 가장 유명한 단편 소설은 "날개"(날개|한국어)이며, 시 "오감도" 또한 잘 알려져 있다.
이상의 작품은 복잡하고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며, 때로는 관습적인 문법에 맞지 않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의 초기 시 대부분(1932년까지 쓰여진 "조선과 건축"에 발표된 시 포함)과 유고 일부는 일본어로 쓰여졌다. 번역은 이상의 원작이 의도한 의미를 완전히 포착하지 못할 수 있으므로, 그의 작품을 정확하게 분석하려면 번역본보다는 원문을 통해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상의 작품을 해석할 때 양자역학을 고려할 가치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26] 이상의 많은 작품에는 물리학 관련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 광주과학기술원(GIST)에는 이상의 문학과 과학을 분석하는 강좌가 있으며, 이 강좌에서 이상에 관한 논문 네 편이 발표되었다.[28][29][30][31]
이상의 대표작들은 다음과 같다.
발표 연도 | 작품 종류 | 제목 | 언어 | 비고 |
---|---|---|---|---|
1930년 | 중편 소설 | 십이월 십이일 | 한국어 | |
1931년 7월 | 시 | 이상한 가역반응 | 일본어 | |
파편의 경치 | 일본어 | |||
▽의 유희 | 일본어 | |||
수염 | 일본어 | |||
BOITEUX · BOITEUSE | 일본어 | |||
공복 | 일본어 | |||
1931년 8월 | 시 | 이인····1···· | 일본어 | 조감도 |
이인····2···· | 일본어 | 조감도 | ||
신경질적으로 비만한 삼각형 | 일본어 | 조감도 | ||
LE URINE | 일본어 | 조감도 | ||
안 또는 얼굴 | 일본어 | 조감도 | ||
운동 | 일본어 | 조감도 | ||
광녀의 고백 | 일본어 | 조감도 | ||
흥행물천사 | 일본어 | 조감도 | ||
1931년 10월 | 시 | 선에 관한 각서 1~선에 관한 각서 7 | 일본어 | 삼차각설계도 |
1932년 3-4월 | 소설 | 지도의 암실 | 한국어 | 비구라는 필명 사용 |
휴업과 사정 | 한국어 | 보산이라는 필명 사용 | ||
1932년 7월 | 시 | AU MAGASIN DE NOUVEAUTES | 일본어 | 건축무한육면각체 |
열하약도 No. 2 | 일본어 | 건축무한육면각체 | ||
진단 0:1 | 일본어 | 건축무한육면각체 | ||
이십이년 | 일본어 | 건축무한육면각체 | ||
출판법 | 일본어 | 건축무한육면각체 | ||
차 8씨의 출발 | 일본어 | 건축무한육면각체 | ||
대낮―어떤 ESQUISSE― | 일본어 | 건축무한육면각체 | ||
1933년 | 시 | 꽃나무 | 한국어 | |
이런 시 | 한국어 | |||
거울 | 한국어 | |||
1934년 | 시 | 보통기념 | 한국어 | |
혈서삼태 | 한국어 | |||
오감도 | 한국어 | |||
지팡이 역사 | 한국어 | |||
소영위제 | 한국어 | |||
산책의 가을 | 한국어 | |||
1936년 | 소설 | 가외가전 | 한국어 | |
1936년 | 소설 | 종생기 | 한국어 | |
1936년 | 수필 | 권태 | 한국어 |
4. 평가 및 영향
이상은 작품에서 문법을 무시하거나 수학 기호를 사용하는 등 기존 문학 체계를 벗어난 실험적인 시도를 했다. 이는 한국 문학에서 이전에 거의 시도되지 않았던 것으로, 그의 작품은 발표 직후부터 현대까지 문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고 평가된다.[50] 그의 작품은 줄거리 전개가 명확하지 않고, 주인공의 내면에만 집중하는 자폐적 특징을 보인다.[50] 주인공 역시 사회에서 소외되어 자신의 흥미나 형이상학적 의미에만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작가 이상 자신에 대한 묘사로도 분석된다.
문법 파괴와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한 독특한 서술 방식은 주인공의 무의식적인 내면을 잘 드러내며,[50] 기존 문학에 대한 반감 또는 무시를 의미하는 동시에, 서술 대상을 없애고 언어 자체에만 비중을 둔다.
일부에서는 이상이 언어유희를 통해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하는 월간지에 '12, 12'라는 제목의 소설을 연재하여 일제에 저항했다고 주장한다. 조선총독부 일본인 관리들이 '12, 12'를 숫자로만 이해하고 한글 발음으로 욕설이 된다는 점을 몰랐다는 점을 이용했다는 것이다.[51] 그러나 이상이 독립운동에 관심을 보인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이러한 주장은 부정되기도 한다.
이상은 일제강점기 한국의 대표적인 아방가르드 작가로, 그의 작품은 언어, 내면성, 자아와 외부 세계의 분리에 대한 실험을 보여준다. 특히 그의 시는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등 서구 문학의 영향을 받았다. 건축가 출신인 이상의 배경은 그의 작품에 영향을 주어, 수학과 건축의 언어를 종종 통합했다.[24]
그의 문학적 유산은 근대주의적 경향으로 특징지어진다. 그의 시는 현대인의 황량한 내면 풍경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오감도 시제1호"는 반현실주의 기법을 사용하여 불안과 공포를 응축한다. 그의 소설은 전통적인 소설 형식을 해체하여 현대 생활을 묘사한다. ''날개''는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하여 현실과 연결될 수 없는 단편적인 상품인 현대인의 소외를 표현한다.[10]
이상은 생전에 작품으로 큰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1950년대부터 재인쇄되기 시작했다. 그의 명성은 1970년대에 급상승했고, 1977년에는 이상문학상이 제정되었다. 2007년에는 한국시인협회에서 선정한 한국 현대 시인 10인에 포함되었다.[25] 그의 대표작으로는 단편 소설 "날개"와 시 "오감도"가 있다.
이상의 작품은 복잡하고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며, 관습적인 문법에 맞지 않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초기 시 대부분과 유고 일부는 일본어로 쓰였다. 번역은 원작의 의미를 완전히 포착하지 못할 수 있으므로, 그의 작품을 정확하게 분석하려면 원문을 통해 이해하는 것이 좋다.
일부에서는 이상의 작품을 해석할 때 양자역학을 고려할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상의 많은 작품에는 물리학 관련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 양자역학은 1936년 도상록이 월간지 "조광"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조선에 처음 소개되었다.[26] 이상의 일본어 능력을 고려할 때 일본어 자료를 통해 양자역학을 알게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광주과학기술원(GIST)에는 이상의 문학 작품을 과학과 다양한 언어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이상의 문학과 과학' 강좌가 있다.[27]
5. 작품 목록
이상은 1930년대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시, 소설, 수필 등 다양한 장르에서 작품을 남겼다. 그의 작품은 난해하고 실험적인 특징으로 인해 발표 당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한국 문학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상의 작품 목록은 다음과 같다.
년도 | 제목 | 번역 제목 | 년도 | 출판사 |
---|---|---|---|---|
1930 | 십이월 십이일 | 십이월 십이일 (December 12) | 1930 | 조선 |
년도 | 제목 (영어 제목) | 번역 제목 | 출판사 | 비고 |
---|---|---|---|---|
1932 | 지도의 암실 | 지도의 암실 (Darkroom of a Map) | 조선 3월호 | 필명 비구[33] |
1932 | 휴업과 사정 | 휴업과 사정 (Shutdown & Reasons) | 조선 4월호 | |
1934 | 지팽이 력사 | 월간 매신 3월호 | ||
1936 | 지주회시 | 지주회시 (Ji-Ju-Whoe-Shi) | 중앙 6월호 | 제목은 "두 마리 거미가 돼지를 만났다"는 뜻[34] |
1936 | 날개 | 날개 (The Wings) | 조광 9월호 | |
1936 | 봉별기 | 봉별기 (Bongbyeolgi) | 여성 12월호 | 제목은 "만남과 이별의 기록"이라는 뜻 |
1937 | 동해 | 동해 (Child's Remains) | 조광 2월호 | |
1937 | 황소와 도깨비 | 황소와 도깨비 (The Bull and the Goblin) | 매일신보 3월 5일~9일 | 우화/동화 |
1937 | 종생기 | 조광 5월호 | ||
1938 | 환시기 | 환시기 (Record of Illusions) | 청색지 6월호 | |
1939 | 실화 | 실화 (Flower Loss) | 문장 3월호 | |
1939 | 단발 | 단발 (Hair Cut) | 조선 4월호 | |
1939 | 김유정 | 김유정 (Kim Yu Jeong) | 청색지 5월호 |
년도 | 제목 | 번역 제목 | 출판사 | 비고 |
---|---|---|---|---|
1936 | 동생 옥희 보아라 | 동생 옥희 보아라 (Read this letter sister Ohk-he) | 중앙 9월호 | 여동생 김옥희(金玉姬)에게 보낸 편지 |
1936 | 김기림에게 2 | 김기림에게 2 (To Kim Ki-rim (2)) | 김기림에게 보낸 편지 | |
김기림에게 3 | 김기림에게 3 (To Kim Ki-rim (3)) | |||
김기림에게 4 | 김기림에게 4 (To Kim Ki-rim (4)) | |||
김기림에게 5 | 김기림에게 5 (To Kim Ki-rim (5)) | |||
김기림에게 6 | 김기림에게 6 (To Kim Ki-rim (6)) | |||
김기림에게 7 | 김기림에게 7 (To Kim Ki-rim (7)) | |||
김기림에게 8 | 김기림에게 8 (To Kim Ki-rim (8)) | |||
1936 | 안필승(안회남)에게 | 안회남(安懷南)에게 보낸 편지 | ||
1936 | 남동생 김운경에게 | 남동생 김운경에게 (To my brother Kim Un-Gyeong) | 남동생 김운경(金雲卿)에게 보낸 편지 | |
1936 | 아포리즘 | 아포리즘 (Aphorism) | 시와 소설(Poetry and Novel) 3월호 | |
1939 | 문장 7월호 | |||
- | 경성고등공업전문학교 사진첩 |
년도 | 제목 (원어) | 제목 (번역) | 출판사 |
---|---|---|---|
1935 | 船の歴史 | 배의 역사 | 신아동 10월호 |
1960 | 얼마 안되는 변해 | 현대문학 11월호 | |
(無題) | (무제) | ||
(無題) | |||
이 아해들에게 장난감을 주라 | 현대문학 12월호 | ||
모색 | |||
(無題) | |||
1961 | 습작 쇼오윈도우 수점 | 현대문학 2월호 | |
1976 | 첫번째 방랑 | 문학사상 7월호 | |
불행한 계승 | |||
객혈의 아침 | |||
황의 기(작품 제2번) | |||
작품 제3번 | 작품 제3번 | ||
1986 | 공포의 기록(서장) | 문학사상 10월호 | |
공포의 성채 | |||
야색 | |||
단상 | |||
2000 | 낙랑 파라의 새로움 | 낙랑 파라의 새로움 | 한국문학연구 |
년도 | 제목 (원어) | 제목 (번역) | 출판사 | 비고 |
---|---|---|---|---|
1932 | 巻頭言1 | 조선과 건축 6월호 | 잡지 편집에 참여하면서 이상의 작품으로 추정됨 | |
巻頭言2 | 조선과 건축 7월호 | |||
巻頭言3 | 조선과 건축 8월호 | |||
巻頭言4 | 조선과 건축 9월호 | |||
巻頭言5 | 조선과 건축 10월호 | |||
巻頭言6 | 조선과 건축 11월호 | |||
巻頭言7 | 조선과 건축 12월호 | |||
1933 | 巻頭言8 | 조선과 건축 5월호 | ||
巻頭言9 | 조선과 건축 6월호 | |||
巻頭言10 | 조선과 건축 7월호 | |||
巻頭言11 | 조선과 건축 8월호 | |||
巻頭言12 | 조선과 건축 10월호 | |||
巻頭言13 | 조선과 건축 11월호 | |||
巻頭言14 | 조선과 건축 12월호 | |||
1978 | 낙서 | 낙서 | 이상 시전작집 아트북 | 전집(2)의 화보에 수록. "낙랑 벽에 이상의 낙서. 여기서 술을 마시며 분을 삭였다."라고 적혀있음. 낙랑은 낙랑 파라라는 카페를 의미하며, 수필 「낙랑 파라의 새로움」에도 등장. |
1976 | 낙서 | 낙서 | 독서생활 11월호 | 쥘 르나르의 「힘의 수첩」내지에 이상의 자화상과 함께 실림. 임종국이 소개. |
1960년 이후 총 26편의 이상의 작품이 발견되었다. 이 중 25편은 비평가 조연현이 입수한 이상의 유고 원고에서 출판된 것이다. 발견 과정에 대해 조연현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얼마 전 한양대학교 야간부 학생 이연복이라는 학생이 낡은 수첩을 가지고 왔습니다. 처음 만나는 학생이었지만 문학에 조예가 깊고 특히 이상을 좋아하는 학생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그가 가져온 수첩은 이상의 일본어 시 원고였습니다. 이연복은 가구점을 하는 친구 김종선의 집에 놀러갔다가 그 수첩을 발견했습니다. 김종선의 형이 골동품 서점을 하는 지인으로부터 폐지로 쓰이던 이 수첩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약 100페이지 분량의 수첩은 약 90%가 손상되어 10% 정도만 온전했습니다. 이연복은 일본어를 잘하지 못했지만 수첩에 적힌 글씨에 흥미를 느껴 수첩을 얻어 李箱全集 등을 비교하며 이상의 미발표 원고로 추정하고 저에게 가져왔습니다."[6]
5. 1. 소설
- 날개
- 종생기
- 《단발(斷髮)》
- 실화(失花)
- 《환시기(幻視記)》
- 《동해(童骸)》
- 《봉별기(逢別記)》
- 《지주회시(蜘蛛會豖)》
- 《지도의 암실》
- 《황소와 도깨비》
- 《지팽이 역사》
- 《사신1-9》
- 《12월 12일》
5. 2. 시
이상은 난해한 시로 유명하며, 초기에는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실험적인 작품들을 많이 발표했다. 대표작으로는 오감도, 건축무한육면각체, 삼차각설계도 등이 있다.《조선과 건축》 1931년 7월호에 〈이상한 가역반응〉, 〈파편의 경치〉, 〈▽의 유희〉, 〈수염〉, 〈BOITEUX·BOITEUSE〉, 〈공복〉 등의 시를 발표했다.[32] 1933년에는 《가톨릭 청년》에 〈꽃나무〉, 〈이런 詩〉, 〈1933, 6, 1〉 등을 발표했고, 같은 해 10월에는 〈거울〉을 발표했다. 1934년 7월에는 《월간매신》에 〈보통기념〉을 발표했다.[32]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연작시 오감도를 발표했으나, 난해하다는 독자들의 항의로 연재가 중단되었다.[32] 이상의 사후, 1937년부터 1939년까지 시, 수필, 소설 등 그의 유고 16편이 발표되었다. 1956년에는 일본어 시 9편이 추가로 발견되어 한국어로 번역 출판되었다.[32] 이후 1960년부터 1976년까지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이상의 것으로 거의 확실시되는 일본어 원고가 추가로 발견되어 한국어로 번역, 소개되었다.[6]
다음은 연도별 이상 시의 목록이다.
연도 | 시리즈 | 제목 | 번역 제목 | 출판사 |
---|---|---|---|---|
1933 | - | 꽃나무 | 꽃나무 (A Flower Tree) | 가톨릭청년 |
이런 시 | 이런 시 (This Kind of Poem) | |||
1933, 6, 1 | ||||
거울 | 거울 (Mirror) | |||
보통 기념 | 월간 매신 | |||
1934 | 오감도 (烏瞰圖) | 시제1호 | 시제1호 (Poem No.1) | 조선중앙일보 |
시제2호 | 시제2호 (Poem No.2) | |||
시제3호 | 시제3호 (Poem No.3) | |||
시제4호 | 시제4호 (Poem No.4) | |||
시제5호 | 시제5호 (Poem No.5) | |||
시제6호 | 시제6호 (Poem No.6) | |||
시제7호 | 시제7호 (Poem No.7) | |||
시제8호 해부 | 시제8호 해부 (Poem No.8 Dissection) | |||
시제9호 총구 | 시제9호 총구 (Poem No.9 Muzzle) | |||
시제10호 나비 | 시제10호 나비 (Poem No.10 Butterfly) | |||
시제11호 | 시제11호 (Poem No.11) | |||
시제12호 | 시제12호 (Poem No.12) | |||
시제13호 | 시제13호 (Poem No.13) | |||
시제14호 | 시제14호 (Poem No.14) | |||
시제15호 | 시제15호 (Poem No.15) | |||
- | 소영위제 | 중앙 | ||
1935 | - | 정식 | 가톨릭청년 | |
지비 | 조선중앙일보 | |||
1936 | - | 지비-어디 갔는지 모르는 안해 | 중앙 | |
역단 | 화로 | 가톨릭청년 | ||
아츰 | ||||
가정 | ||||
역단 | ||||
행로 | ||||
- | 가외가전 | 시와 소설 | ||
명경 | 여성 | |||
위독 | 금제 | 조선일보 | ||
추구 | ||||
침몰 | ||||
절벽 | ||||
백주 | ||||
문벌 | ||||
위치 | ||||
매춘 | ||||
생애 | ||||
내부 | ||||
육친 | ||||
자상 | ||||
- | I WED A TOY BRIDE | 삼사문학 | ||
1937 | - | 파첩 | 찢어진 수첩 (Torn Notebook) | 자오선 10월호 |
1938 | - | (무제) | (무제) (Untitled) | 맥(제3호) 10월호 |
(무제) (기이) | (무제) (Untitled) | 맥(제4호) 10월호 |
연도 | 시리즈 | 제목 (원어) | 제목 (번역) | 출판사 |
---|---|---|---|---|
1931 | - | 異常ナ可逆反應 | 이상한 가역반응 | 조선과 건축 7월호 |
破片ノ景色 | 파편의 경치 | |||
▽ノ遊戯 | ▽의 유희 | |||
ひげ (李箱) | 수염 (이상) | |||
BOITEUX·BOITEUSE | ||||
空腹 | 공복 | |||
鳥瞰圖 | 二人····1···· | 두 사람 ····1···· | 조선과 건축 8월호 | |
二人····2···· | 두 사람 ····2···· | |||
神経質に肥満した三角形 | 신경질적으로 비만한 삼각형 | |||
LE URINE | ||||
顔 | 얼굴 | |||
運動 | 운동 | |||
狂女の告白 | 광녀의 고백 | |||
興行物天使 | ||||
三次角設計図 | 線に関する覚書1 | 선에 관한 각서 1 | 조선과 건축 10월호 | |
線に関する覚書2 | 선에 관한 각서 2 | |||
線に関する覚書3 | 선에 관한 각서 3 | |||
線に関する覚書4 | 선에 관한 각서 4 | |||
線に関する覚書5 | 선에 관한 각서 5 | |||
線に関する覚書6 | 선에 관한 각서 6 | |||
線に関する覚書7 | 선에 관한 각서 7 | |||
1932 | 건축 무한육면체 | AU MAGASIN DE NOUVEAUTES | 백화점에서 | 조선과 건축 7월호 |
熱河略図 No.2 | 열하약도 No.2 | |||
診断 0:1 | 진단 0:1 | |||
二十二年 | 22년 | |||
出版法 | 출판법 | |||
且8氏の出発 | 차8씨의 출발 | |||
真昼――或るESQUISSE―― | 한낮――어떤 ESQUISSE―― | |||
1940 | - | 蜻蛉 | 잠자리 | 유백색의 구름 |
一つの夜 | 어느 밤 | |||
1956 | 隻脚 | 외다리 | 이상 전집 | |
距離(女去りし場合) | 거리(여자가 떠난 경우) | |||
囚人の作った箱庭 | 죄수가 만든 정원 | |||
肉親の章 | 육친의 장 | |||
内科 | 내과 | |||
骨片ニ関スル無題 | 뼈 조각에 관한 무제 | |||
街衢ノ寒サ | 거리의 추위 | |||
朝 | 아침 | |||
最後 | 마지막 | |||
1960 | (無題) | (무제) | 현대문학 11월호 | |
1931年(작품 제1번) | 1931년(작품 제1번) | |||
1961 | 구두 | 구두 | 신동아 1월호 | |
어리석은 석반 | 현대문학 1월호 | |||
1966 | (無題) | (무제) | 현대문학 7월호 | |
애야 | ||||
1976 | 회한의 장 | 문학사상 6월호 | ||
단장 | 문학사상 7월호 | |||
요다 준이치(與田準一) | 요다 준이치(與田準一) | |||
츠키하라 토오이치로(月原橙一郞) |
5. 3. 수필
년도 | 제목 | 번역 제목 | 출판사 | 비고 |
---|---|---|---|---|
1934 | 혈서삼태 | 신여성 6월호 | ||
산책의 가을 | 산책의 가을 (The autumn of a walk) | 신동아 10월호 | ||
1935 | 현대미술의 요람 | 현대미술의 요람 (The cradle of modern art) | 매일신보 3월 14일~3월 23일 | |
산촌여정 | 매일신보 9월 27일~10월 11일 | |||
1936 | 문학을 버리고 문화를 상상할 수 없다 | 문학을 버리고 문화를 상상할 수 없다 (I can't imagine culture without literature) | 조선중앙일보 1월 6일 | |
나의 애송시 | 나의 애송시 (My favorite poem) | 중앙 1월호 | ||
논단시감 | 조선일보 1월 24일~1월 28일 | |||
서망률도 | 조광 3월호 | |||
조춘점묘 | 매일신보 3월 3일~3월 26일 | |||
편집후기 | 시와 소설 3월호 | |||
여상사제 | 여성 4월호 | |||
내가 좋아하는 화초와 내 집의 화초 | 조광 5월호 | |||
약수 | 중앙 7월호 | |||
EPIGRAM | 여성 8월호 | |||
아름다운 조선말 | 아름다운 조선말 (The Beautiful Korean Language) | 중앙 9월호 | ||
행복 | 행복 (Happiness) | 여성 10월호 | ||
가을의 탐승처 | 조광 10월호 | |||
추정잡필 | 매일신보 10월 14일~10월 28일 | |||
1937 | 십구세기식 | 삼사문학 4월호 | ||
공포의 기록 | 공포의 기록 (Records of Horror) | 매일신보 4월 25일~5월 15일 | ||
권태 | 조선일보 5월 4일~5월 11일 | |||
슬픈 이야기 | 슬픈 이야기 (A Sad Story) | 문장 6월호 | ||
오감도 작자의 말 | 오감도 작자의 말 (Remarks from the author of "Crow's Eye View") | 문장 6월호 | 박태원의 추도사 「이상의 편모」에 따르면, "오감도 30편이 15편으로 단축되면서 쓰여졌다. 당시에는 발표되지 않았다." | |
1938 | 문학과 정치 | 문학과 정치 (Literature and Politics) | 사해공론 7월호 | |
1939 | 실락원 | 실락원 (Paradise Lost) | 조광 2월호 | |
병상 이후 | 청색지 5월호 | |||
동경 | 문장 5월호 | |||
최저낙원 | 조선문학 5월호 |
6. 이상을 다룬 작품
- 금홍아 금홍아한국어 (1995년) - 배우: 김갑수[39]
- 이상의 날개한국어 (1968년) - 배우: 신성일[38]
- 이상 그 이상한국어 (MBC, 2013년) - 배우: 조승우[40]
- 58년 개띠 총각 감독한국어 (2014년) - 배우: 조찬형
- 《스모크》(Smoke영어, 2017년) - 이상의 "오감도"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 이상의 여러 측면을 대변하는 세 인물의 삶을 다루며, 뮤지컬의 서사와 가사에는 이상의 문학 작품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포함되어 있다.[40]
- 《팬레터》 (2016년) - 1930년대를 배경으로 이상, 김유정, 구인회의 일화를 바탕으로 한다.
- 《라흐헤스트》(L'art reste프랑스어, 2022년) - "예술은 남는다"라는 뜻으로, 서양 화가 김향안(변동림), 그의 첫 남편 이상, 그리고 두 번째 남편 김환기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 《꾿빠이, 이상》(Kkood bye, Yi Sang한국어, 2017년) - 서울예술의전당 주최. 2016년 동명의 원작 소설[41]을 바탕으로 한다.
- 림버스 컴퍼니 - 롤플레잉 게임 림버스 컴퍼니에는 이상이라는 이름의 등장인물이 등장한다. 이 인물은 실제 시인 이상에게서 영감을 받았으며, 이상의 아방가르드 정신을 구현하고 있다. 게임에서 이상은 재능 있는 과학자로 묘사되는데, 이는 식민지 시대 건축 기술자였던 실제 작가의 경력을 반영한다. 등장인물의 대사는 종종 이상의 시, 예를 들어 "날개"와 "거울"을 언급하며 그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시간과 존재에 대한 심오한 주제를 반영한다. 게임에는 "구인회"에서 영감을 받은 "구인회 9인의 문학가 연맹"이라는 이름의 집단도 등장한다. 게임의 일부 적대자들은 유치진과 박태원과 같이 친일 활동에 가담했던 구인회의 역사적 인물들을 모델로 했다.
- 신해경(Shin Haegyeong영어) - 자신의 음악에서 이상의 문학적 주제를 자주 활용한다. 그의 예명과 여러 앨범 제목은 이상의 작품을 직접적으로 참조한다. 예를 들어, 그의 이름은 이상의 본명인 김해경에서 따왔다. 그의 앨범 "My Reversible Reaction영어"은 이상의 시 "이상한 가역반응한국어"에서 영감을 받았다. "And then영어" 뮤직비디오의 끝에는 이상의 소설 《봉별기》의 구절인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한국어"이 직접적으로 나타난다.[42]
참조
[1]
웹사이트
이상(李箱)
https://encykorea.ak[...]
1996
[2]
웹사이트
[한국 현대시 10대 시인] <1> 김소월
https://www.hankooki[...]
2007-10-15
[3]
웹사이트
online
http://klti.or.kr/ke[...]
2013-09-03
[4]
웹사이트
이상 연보
http://yisang.or.kr/[...]
이상문학회
2019-03-28
[5]
서적
이상 평전 암호적 예술의 숲을 찾아서
전북대학교출판문화원
[6]
서적
이상 전집 1
태학사
[7]
서적
이상 전집 4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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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평전 암호적 예술의 숲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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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 수필집 '구보가 아즉 박태원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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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이상 시문학상에 이승훈(춘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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